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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은 교토 태생인 Tomoyuki Tanaka의 원맨 프로젝트 그룹으로 98년에 셀프 타이틀 데뷔앨범을 발표했다. 토모유키는 80년대에 Margarine Strikes Back이란 그룹의 베이시스트였다가 일렉트로니카로 선회하고 Sound Impossible이라는 디제이 팀을 만들어 라운지와 브라질리안 팝 등을 믹스하며 라이브를 하다가 당시 딜라이트를 굴리고 있던 토와테이에게 레코딩 제의를 받아 첫 데뷔 앨범을 발표하게 되었다. fantastic plastic machine이란 쿨한 이름이 알려주는 것처럼 데뷔 앨범은 확실히 판타스틱했고 플라스틱했으며 또한 머신이기도 했다. 코넬리우스의 판타즈마와 함께 미국 진출을 한 몇안되는 시부야 앨범이기도 했고 피치카토 파이브나 코넬리우스 등의 당시 시부야와는 조금 차별된 클럽친화적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마치 팝아트 작품을 보는듯한 앨범커버를 비롯해서 그의 음악은 나름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씨엠제이 샘플러에 dear mr.salesman을 올려놓기도 했고 순식간에 시부야 음악의 일익을 담당하는 간판스타가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앨범이 스나가 타츠오나 프리템포 그리고 여타 클럽친화적인 시부야스탈에 끼친 영향은 엄청났던 것 같다. 라운지와 하우스를 기반으로 달콤한 멜로디를 첨가하고 보사노바, 프렌치팝, 바로크팝, 그리고 드럼앤베이스 등을 양념으로 하고 어떨땐 저패니메이션 사운드트랙처럼 들리기도 하며 피치카토 파이브 스타일의 보컬을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금 들어도 이 데뷔앨범은 이 바닥 최고의 앨범이라 할만하다.
토모유키는 믹스 앨범을 많이 내기도 했는데 그중 유명한 sushi3003에는 이런 킬링트랙이 숨어있었다. samba de minha namoradinho라는 곡인데 난 지금도 이곡이 토모유키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준다고 생각한다. 2집은 Luxury라는 이름으로 99년에 발표되었는데 전체적으로 좀 더 클럽지향적으로 변화한 앨범이었다. 당시 꽤 비싼 시디가격때문에 듣고 싶어도 못들었던 기억이 난다. 선곡한 일렉트릭 레이디 랜드는 1집에 디어 미스터 세일즈맨을 잇는 피치카토식 트랙이라고 할 수 있다. 1집이 아직 기존의 시부야스탈의 영향이 남아있는 앨범이라면 2집은 확실히 클럽뮤직으로 그의 방향이 정해진 앨범이다. 3집은 뷰티풀이란 이름으로 01년에 발표되었는데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취약했던 지점이 아닐까 한다. 그전에 99년에 STYLE #09/TOMOYUKI TANAKA라는 믹싱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때쯤엔 시부야도 매너리즘이라고 할까 아무튼 슬럼프에 빠져서 많은 뮤지션들은 나름의 변화로 돌파구를 찾았는데 토모유키도 디스코라는 이디엄으로 나름의 변화를 시도했다. 2002년에 Les Plus - Best Of Fantastic Plastic Machine라는 베스트성 앨범이 나온 후 too가 드디어 2003년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앨범에서 토모유키는 다시 예전의 트로피컬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전반적으로 일렉트로니카의 느낌이 강한 앨범이지만 달콤한 멜로디와 센스있는 감각은 여전했다. 너무 클럽지향적으로 가버려서 많은 사람들은 그의 최악의 앨범으로 꼽기도 하지만 나는 판타스틱 플라스틱적인 무엇이 이 앨범에 단적으로 드러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예를 들어보면 은밀한 미소같은 것이다. 서로 예의를 차리는 공식석상에서 (만약 그것이 음악씬이라고 한다면) 토모유키는 에이, 알잖아 하고 어깨를 툭치며 능글맞게 웃는다. 그런 느낌. 유치하고 속물적이지만 왠지 가담하고 싶어지는. 왠지 낯이 붉어지지만 싫지는 않은 그런 지점. 이 앨범 안에 들어가 있으면 밖에서 바라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은 철저하게 어덜트한 느낌이지만 디어후프와는 또 다르게 어른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게 된다. "우리는 유치함을 만끽할만큼 어른이라구!" 그리고 이런 프로포즈에 으흐흐하고 웃지 않는 사람은 인생의 낙을 하나 잃어버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왠지 밉지만은 않은 변태아저씨의 므흣한 웃음. too에 이어 too의 리믹스 앨범인 zoo가 나왔다. 여전하지만 역시 초점은 신곡 you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유포리아나 네버에버 등의 트랙들이 돋보인다. 참여뮤지션으로는 쿠프, 몬도 그로소, 타히티 80, pe'z, 토미타 랩 등이 있다.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은 현재 일본에서 스가나 타츠오의 스가나 티 익스페리언스와 프리템포와 함께 클럽 시부야를 대표하는 이름이다. 이쪽 계열 뮤지션의 특징이 있다면 정규작만큼이나 믹싱앨범을 많이 발표한다는 것인데 04년에 나온 신보 sound concierge #401과 #402는 그것의 좋은 샘플이다. 각각 부제가 붙어있는데 401은 sound concierge #401 do not disturb이고 402는 Sound Concierge #402 Four Kicks Adventure이다. 제피타운에 올라온 버전은 401이 엠피가 깨져있어서 뮤크엔 402만 올라온 것 같다. 물론 내가 가진 401버전도 깨진 것이지만 버리기 아까워서 그냥 가지고 있다. 401은 라운지계열의 믹스이고 402는 하우스계열의 믹스이다. 개인적으로 라운지쪽이 더 좋은 것 같다. 비틀즈, 아트 오브 노이즈, 로이숍, 에고레핑, 하아라마스 등의 노래들이 믹스되어 있다. 하우스쪽엔 아쿠펜이나 토모유키 자신의 노래들이 몇개 보인다. 사프리 듀오의 노래도 있고 등등. 이 두장의 앨범은 토모유키의 두갈래 음악적 토양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것이 한장으로 합쳐질때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만의 음악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들은 중요하다. 또한 앞으로 나올 신보의 방향성을 추측해보게 하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뭐 이것저것 전부 제쳐놓고라도 음악 자체가 그냥 듣기 좋다. 시부야가 팝아트와 유사하다거나 포스트모던의 탁월한 샘플이라거나 이런 말들은 이제 또다시 쓰기엔 재미없는 소재가 되고 말았다. 지금 시부야는 거품이 거의 빠지고 듣는 사람들만 듣는 분위기이다. 잘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잘하고 프리템포나 하바드같은 멋진 신인들도 나오고 있고. 멜로디면에서 거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구최고를 자랑하고 있기 때문에 그 당도에 있어서 단것을 좋아하는 분들은 거의 필수품이라고 할만하다. 그리고 조증모드가 대부분인데 이것도 우울증 치료에 꽤 도움이 된다. 이지리스닝하면서도 언이지메이킹한 음악 이런 말도 이제 지겹다. 세상에서 가장 쿨한 음악. 음 나쁘지 않다. 한국은 아직 이런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다. 하와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은 이런 파라다이스한 분위기에 익숙하게 된 것 같다. 하와이에서 지내다보면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의 음악같은 기분이 들지 않을까. 어떤 감정도 없이 그저 상큼발랄모드가 거의 강요되는 것처럼 언제나 밝고 환하게 웃고 있는 그런 낙원같은. 세상엔 그런 곳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런 음악도 존재하는 것이다. 날씨나 기후 이런 것들은 의외로 중요하다.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의 음악은 겨울이 없는 곳에서 탄생한 음악같다. 하지만 자연적이 아니라 인공적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토모유키가 하우스 뮤직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무라카미 류가 말했던 것처럼 쿠바 음악에 비하면 하우스 뮤직은 죽음의 음들이다. 거기엔 일종의 절망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낙관주의의 가면을 쓰고 있는 무의식적 절망같은 것. 현대에 이 절망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사람들에겐 이 음악은 단지 가볍고 구역질나는 음악일 뿐일 것이다. 하지만 절망하고 있는 사람에겐 편안한 안식처같은 음악이다. 쿨하게 거리를 두며 릴렉스하게 해주는 음악. 이 음악의 표면엔 달콤한 솜사탕들이 있지만 이면엔 지독한 공허가 있다. 일단 기본적으로 이 공허를 공유하지 않고 있다면 그저 표면에 솜사탕들이 이 음악의 전부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런 것에 익숙한 사람들은 모든 진정성들에 의심스런 눈길을 보낸다. 아직도 공허함이 없는 뭔가가 존재할까? 아직도 공허없이 이 세상을 사는 것이 가능할까? 그런 의미에서 이 음악은 동시대를 완벽하게 관통하고 있는 음악이다. 오히려 시대착오적인 것은 아직도 진정성을 찾아헤매는 음악이다. 우리 시대는 포스트모던이라고 불리운다. 그것은 내가 보기엔 이런 뜻이다. 무의식적인 절망 후에, 모든 역사적 행위의 종말 이후에 찾아온 역사-향유이다. 이제 우리는 더이상 우리자신을 역사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과거의 역사를 향유하는 방관자로 존재하게 된다.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은 그런 의미에서 세상에 거리를 두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음악이다. 언제나 쿨하게, 일정부분 이상은 터치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것이 무의식적이기 때문에 잘 파악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 특히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처럼 "알잖아?" 하고 어깨를 툭 칠 경우에는 더욱 더 잘 알아볼 수 있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중에 이런 달콤한 절망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나는 이렇게 이미 절망해버린 사람들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하루키나 바나나의 소설들도 그런 소설들이다. 어떤 사람의 반쪽 부분이 닫혀져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나머지 반쪽만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런 사람들은 보기엔 그저 키치적으로, 우파로, 체제순응적으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그런것 따윈 이미 상관하지 않는다. 이미 세상에 대한 믿음이 상실되어 버린 것이다. 이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쿨하게 거리를 두는 쾌적함, 그저 지금 이곳에서의 약간의 쾌락들이다. 그런 점에서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은 그런 사람들에게 잘 어울리는 음악이다. 절망과 공허를 공유하면서 가벼움과 쿨함으로 무장하고 달콤한 쾌락을 선사하며 절대로 깊이 접근하지 않는. 이 음악은 그렇게 우리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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